2007/06/28 13:29
[우리시대 슬픈노동자]
〈신자유주의가 도입되면서 더 나은 삶을 위해 약속됐던 고통 분담은 노동자들에게만 전가됐다. 효율성이라는 명목아래 직장에서 줄줄이 쫓겨나고 자본이라는 거대한 권력 앞에 힘없이 쓰러지기 일쑤다. 농성 500일을 앞둔 KTX 여승무원과 직장에서 쫓겨난 시사저널 기자들을 통해 우리시대 노동자들의 자화상을 들여다본다.〉
기자 전원 사표 쓴 시사저널
시사저널 노조원들은 지난 26일 회사에 사표를 던졌다.
정희상 시사저널 노조위원장이 26일 사표를 제출한 뒤 그동안 몸담았던 편집국 현판 앞에 헌화를 하고 있다. /오마이뉴스 제공
삼성 비판 기사 삭제 사건으로 촉발됐던 ‘시사저널 파업 사태’의 끝은 사측과 노조측의 갈라서기로 결말이 난 것이다. 시사저널의 정체성과 편집권의 독립을 위해 싸웠던 노조의 1년에 걸친 투쟁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정희상 노조위원장, 김은남 사무국장이 심상기 서울미디어그룹 회장 자택 앞에서 단식농성에 들어가는 등 ‘끝장 투쟁’을 벌였지만 사측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안은주 전 시사저널 기자는 “파업 3개월째 노조가 구조조정안까지 수용하는 등 최대한 양보를 해서라도 편집국을 정상화하고자 했지만 경영진은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아 협상이 깨졌다”고 말했다.
시사저널 기자들에게 자본의 벽은 높았고, 노동운동의 현실은 열악했다.
안씨는 “기자로서 노동 현실을 취재해 봤으면서도 노동자로서 사측과 싸워 보고서야 우리나라 노동법이 노동자에게 얼마나 불리한지를 몸소 느끼게 됐다”고 토로했다. 안씨는 “임금과 근로조건 외의 이유로 하는 파업은 무조건 불법파업이 되는 현실 속에서 편집권 독립을 위해 싸우는 현실은 너무도 가혹했다”고 말했다.
시사저널 노조 사태는 금창태 사장이 ‘삼성 고위층의 인사권 남용 의혹’을 제기한 기사를 인쇄소에서 삭제하면서 불거졌다. 사태가 1년 넘게 지속되면서 기자들은 언론인이기 이전에 노동자로서 극심한 고통을 겪어야 했다. 언론사 초유의 직장폐쇄를 경험했고 파업 6개월간 한푼의 월급도 받지 못했다.
노조는 독립언론으로서 과거 시사저널의 명맥을 이을 독자적 매체를 창간해 새출발한다.
노조 관계자는 “새 매체를 통해 진실과 정의를 향한 우리의 싸움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고은기자〉
“일하고 싶다” 484일간의 절규…KTX 여승무원
철도노조 서울 KTX열차승무지부 민세원 지부장(34)은 27일 서울 용산에 있는 철도노조 건물에서 아침을 맞았다.
하루 전인 26일 정부가 공공부문 비정규직 종합대책을 발표했지만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1년 넘게 힘겨운 싸움을 벌여온 KTX 여승무원들에 대한 대책은 들어있지 않았다.
“애초에 기대를 하지 않았어요. 4월에 만들어진 실무추진단 보고서에도 빠져 있었거든요. 혹시나 하는 기대는 다들 가지고 있었지만….”
대답은 차분했지만 민씨의 목소리에서는 아쉬움이 묻어났다.
농성 484일차. 지난해 봄 ‘불법파견 취소와 직접고용’을 요구하다 해고된 뒤 KTX 여승무원들은 지금까지 이곳에서 합숙생활을 계속하고 있다. 1년을 훌쩍 넘긴 길고 고통스러운 싸움을 거치면서 처음 380명에 이르렀던 동료들은 이제 72명밖에 남지 않았다.
지난 1년여간 천막농성에서부터 마라톤 회의, 집회와 기자회견, 1인시위와 인권위 진정 등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했다. 하지만 철도공사 측은 꿈쩍하지 않았다. 비정규직이라도 좋으니 열차에 타게만 해달라던 이들의 요청도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농성이 길어지면서 경제생활은 말 그대로 ‘파산’ 지경이 됐다. 지난해 5월 용역업체로부터 일괄 해고통보를 받은 뒤 이들이 손에 쥐었던 돈은 석달치의 실업급여뿐. 양말을 팔았고 나물도 팔았다. 북한산 술이 잘 팔린다고 해서 그것도 가져와 팔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투쟁기금은커녕 생활비도 부족했던 이들은 얼마전부터 철도노조 정규직 사원들의 후원금을 70만원씩 받으며 그나마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민씨는 “모두 너무 오랫동안 고통을 받아서 상처밖에 남지 않았다”며 “이제는 현장으로 돌아가 일할 수 있기만을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이호준기자〉
〈신자유주의가 도입되면서 더 나은 삶을 위해 약속됐던 고통 분담은 노동자들에게만 전가됐다. 효율성이라는 명목아래 직장에서 줄줄이 쫓겨나고 자본이라는 거대한 권력 앞에 힘없이 쓰러지기 일쑤다. 농성 500일을 앞둔 KTX 여승무원과 직장에서 쫓겨난 시사저널 기자들을 통해 우리시대 노동자들의 자화상을 들여다본다.〉
기자 전원 사표 쓴 시사저널
시사저널 노조원들은 지난 26일 회사에 사표를 던졌다.
정희상 시사저널 노조위원장이 26일 사표를 제출한 뒤 그동안 몸담았던 편집국 현판 앞에 헌화를 하고 있다. /오마이뉴스 제공
삼성 비판 기사 삭제 사건으로 촉발됐던 ‘시사저널 파업 사태’의 끝은 사측과 노조측의 갈라서기로 결말이 난 것이다. 시사저널의 정체성과 편집권의 독립을 위해 싸웠던 노조의 1년에 걸친 투쟁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정희상 노조위원장, 김은남 사무국장이 심상기 서울미디어그룹 회장 자택 앞에서 단식농성에 들어가는 등 ‘끝장 투쟁’을 벌였지만 사측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안은주 전 시사저널 기자는 “파업 3개월째 노조가 구조조정안까지 수용하는 등 최대한 양보를 해서라도 편집국을 정상화하고자 했지만 경영진은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아 협상이 깨졌다”고 말했다.
시사저널 기자들에게 자본의 벽은 높았고, 노동운동의 현실은 열악했다.
안씨는 “기자로서 노동 현실을 취재해 봤으면서도 노동자로서 사측과 싸워 보고서야 우리나라 노동법이 노동자에게 얼마나 불리한지를 몸소 느끼게 됐다”고 토로했다. 안씨는 “임금과 근로조건 외의 이유로 하는 파업은 무조건 불법파업이 되는 현실 속에서 편집권 독립을 위해 싸우는 현실은 너무도 가혹했다”고 말했다.
시사저널 노조 사태는 금창태 사장이 ‘삼성 고위층의 인사권 남용 의혹’을 제기한 기사를 인쇄소에서 삭제하면서 불거졌다. 사태가 1년 넘게 지속되면서 기자들은 언론인이기 이전에 노동자로서 극심한 고통을 겪어야 했다. 언론사 초유의 직장폐쇄를 경험했고 파업 6개월간 한푼의 월급도 받지 못했다.
노조는 독립언론으로서 과거 시사저널의 명맥을 이을 독자적 매체를 창간해 새출발한다.
노조 관계자는 “새 매체를 통해 진실과 정의를 향한 우리의 싸움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고은기자〉
“일하고 싶다” 484일간의 절규…KTX 여승무원
철도노조 서울 KTX열차승무지부 민세원 지부장(34)은 27일 서울 용산에 있는 철도노조 건물에서 아침을 맞았다.
하루 전인 26일 정부가 공공부문 비정규직 종합대책을 발표했지만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1년 넘게 힘겨운 싸움을 벌여온 KTX 여승무원들에 대한 대책은 들어있지 않았다.
“애초에 기대를 하지 않았어요. 4월에 만들어진 실무추진단 보고서에도 빠져 있었거든요. 혹시나 하는 기대는 다들 가지고 있었지만….”
대답은 차분했지만 민씨의 목소리에서는 아쉬움이 묻어났다.
농성 484일차. 지난해 봄 ‘불법파견 취소와 직접고용’을 요구하다 해고된 뒤 KTX 여승무원들은 지금까지 이곳에서 합숙생활을 계속하고 있다. 1년을 훌쩍 넘긴 길고 고통스러운 싸움을 거치면서 처음 380명에 이르렀던 동료들은 이제 72명밖에 남지 않았다.
지난 1년여간 천막농성에서부터 마라톤 회의, 집회와 기자회견, 1인시위와 인권위 진정 등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했다. 하지만 철도공사 측은 꿈쩍하지 않았다. 비정규직이라도 좋으니 열차에 타게만 해달라던 이들의 요청도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농성이 길어지면서 경제생활은 말 그대로 ‘파산’ 지경이 됐다. 지난해 5월 용역업체로부터 일괄 해고통보를 받은 뒤 이들이 손에 쥐었던 돈은 석달치의 실업급여뿐. 양말을 팔았고 나물도 팔았다. 북한산 술이 잘 팔린다고 해서 그것도 가져와 팔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투쟁기금은커녕 생활비도 부족했던 이들은 얼마전부터 철도노조 정규직 사원들의 후원금을 70만원씩 받으며 그나마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민씨는 “모두 너무 오랫동안 고통을 받아서 상처밖에 남지 않았다”며 “이제는 현장으로 돌아가 일할 수 있기만을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이호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