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x노동자들도 쇠사슬 농성을 하고.
지금 이렇게 밖에 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이 절박함이 이후 평등세상 만드는 역사가 되었으면 합니다.
기륭전자 노동자 들의 이야기
그리고 자녀가 만든 동영상
함께보고 싶어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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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5일 오전 10시 안양 홈플러스 앞의 풍경.
두부류의 아주머니들이 있다.
이날은 홈플러스 안양점이 오픈하는 날이다.
많은 아주머니 들이 사은품을 받기위해 줄을 서고 있다.
카트를 끌고 매장 정문을 들어가는 아주머니, 손님들.
바로 그 옆
홈에버에서 일하고 있는, 아니 일했던 아주머니 노동자들이 있다.
전날 찜통더위에 노숙농성을 하고 피로한 기색.
이랜드 홈에버가 5월 홈플러스에 인수되고, 인수한 홈플러스가 대화를 하지 않자
대화촉구 기자회견에 온 이랜드 비정규직 노동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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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박 2일 노숙농성 참가자들은 매장 선전전 후 옥상에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현수막을 걸었지만, 5분도 되지않아 철거되었다. |
| 촛불정국관련 좋은 분석글이라고 생각되어집니다. 추천! 새로운 형태의 민족주의가 부상하고 있다 | ||||||||||||||||||||||||||||||||||||||||||||||||
| <초점> 촛불은 어떻게 진화할 것인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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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글에서는 5월 초순부터 시작된 촛불시위가 내포하고 있는 운동적 쟁점에 대해 논해 보고자 한다. 촛불시위는 6.10 시위를 거쳐 6.26 정부가 고시를 전격 단행하면서 중대한 국면에 접어들었다. 당면해서 촛불시위를 어떻게 확대발전시킬 것인가 하는 고민과 함께 촛불시위가 내포하고 있는 운동적 함의를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검토해 보는 것도 중요한 작업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에 따라 본 글에서는 주로 후자의 문제에 집중하여 논의를 전개해 보고자 한다. 1. 조직과 참여 방식 1) 촛불시위는 온라인을 통한 소통, 자발성에 기초한 적극적인 행동, 기존의 정보원(源)과 구별되는 독자적인 정보 매체의 구비, 명료하고 단호한 정치의식 등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는 전통적인 기존의 운동문화ㆍ구조와는 상당히 다른 것이다. 기존의 운동문화와 구조는 대체로 지도와 대중의 결합 중에서 지도를 중시하고 위계적이고 정연한 조직체계를 갖추고 있으며 질서정연한 통제와 전술 운용 등을 강조한다. 거리에서 명확히 확인했듯이 전자가 후자를 압도하고 있다. 이에 따라 조중동(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등 기존의 오프라인 매체의 영향력은 급감하고 전통적인 조직질서, 문화를 가진 운동집단(민주노동당, 진보연대, 민주노총 등) 전체가 주변화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촛불시위의 이러한 발전은 절차적 민주주의가 확산되고 이에 대한 공고한 집단적 신념이 보편화되었으며 인터넷, 모바일 등 정보통신 매체가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정보와 지적능력이 대중화된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2) 위와 같은 사실이 갖고 있는 운동실천적 함의는 다음과 같다. 소통과 연대, 개방과 참여 등 촛불시위에서 작동하는 문화적 감수성, 조직ㆍ참여 방식에 맞게 운동진영 또한 전체 조직 원리와 방식을 개편할 필요가 있다. 구체적으로 첫째, 불필요한 중층적 의사결정 구조를 간소화해야 한다. 대의원대회, 중앙위원회 등 중층화된 의사결정 구조, 총화ㆍ보고 따위와 같은 지루하고 장황한 계통 구조를 대폭 축소하여 의사 결정 방식을 기민하고 능동적인 방식으로 개편해야 한다. 둘째, 의견 수렴과 결정 과정에서 하층에 보다 많은 자율권을 주는 방향으로 개편해야 한다. 진보진영의 의사 결정 구조는 소수의 중앙 간부에게 너무 많은 권한과 정보, 의사결정권이 주어진 반면 중하층은 이를 집행하는 조직행동적 통일성만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셋째, 조직행동의 통일성을 강조하기보다는 큰 방향의 원칙만 제시하고 미세한 행동의 통일성은 현장상황에 맞게 유연하고 탄력적으로 적용하는 문제를 고민해 볼 수 있다. 넷째, 행동의 통일성보다는 정보와 사상, 일방적인 교양과 설복보다는 쌍방향의 소통과 공감을 중시해야 한다. 위의 문제는 단순히 온라인 운동의 비중을 높이는 문제가 아니라 온라인 공간에서 구현되는 조직원리와 정신을 체현하여 우리 자신을 근본적으로 재구성하는 문제이다. 논점을 명확히 하면 5~6월 촛불시위와 기존의 운동진영은 대단히 큰 폭으로 괴리되어 있다. 이는 헌신과 행동의 문제가 아니라 촛불시위와 운동진영이 갖고 있는 철학적ㆍ문화적 감수성과 조직원리가 달랐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이다. 촛불시위가 온라인ㆍ웹 2.0과 같은 첨단 정보화시대의 산물이라면 운동진영은 1980년대 중반의 낡은 질서와 정신을 상당 부분 온존시키고 있는 시대적 격차와도 직결된 문제이다. 운동진영은 이 시대의 괴리만큼 촛불시위의 정신과 원리를 배우려 노력해야 한다. 2. 촛불시위와 경제상황ㆍ계급 관계 1) 먼저 세계 경제 상황을 간략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2001~2005년 ‘미국의 부동산 버블-중국의 고정자산투자ㆍ저가 공산품 수출’이 주도하는 ‘고성장-저물가’ 체제가 무너지고 2007년 8월 미국의 서브프라임 사태를 계기로 전 세계적인 규모의 ‘고물가-저성장’ 체제로 전환되고 있다. 이에 따라 전 세계적인 범위에서 금융 위기(미국, 베트남, 발틱 3국 등)가 나타나고 소요와 시위가 빈발(아르헨티나 농민, 유럽 물류, 저개발국가 곡물 등)하고 있으며 예측하기 어려운 경제적 불안정성이 노정되고 있다. 특히 미국적 경제질서에 깊이 포박되어 있던 한국경제는 심각한 내상을 입고 신음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보면 짧게는 1995~2005년 시기 미국 주도의 경제질서, 길게는 1970년대 초반 시작된 신자유주의가 변화하는 구조적 전환기이다. 이런 상황에서 등장한 이명박 정부는, 첫째 시대와 부합하지 않는 낡은 경제정책과 무능, 둘째 신자유주의의 가속화로 상황을 악화시켰다. 상반기 강만수-최중경 라인의 고환율 정책은 물가불안을 가중시켰고 성장만능주의는 저성장 체제로 전환되는 세계경제 구조와 부합하지 않았다. 특히 수출주도의 성장이 내수로 이어지는 메커니즘이 붕괴된 조건에서 저성장은 고용ㆍ내수 등에 심각한 타격을 가하고 사회적 안전망이 부재한 저소득층에 회복하기 어려운 고통을 안기고 있다. 전통적인 토건정책의 산물인 대운하 정책은 이미 상당한 부동산 버블을 안고 있는 한국경제에 메가톤급 폭탄으로 잠재되어 있다. 위와 같은 시대착오적인 이명박 정부의 오판과 무능이 불과 100일밖에 되지 않는 이명박 정부를 고립시킨 경제적 배경이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이명박 정부는 대운하 중지, 성장에서 안정으로의 정책 전환, 6.8 민생대책을 통한 세금 환급 조치 등 대통령 후보 시절 내세웠던 주요 정책 전반을 수정하고 있는데 이는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이 세계경제의 추세와 맞지 않는 시대착오적인 구시대의 산물임을 스스로 자인한 것이나 다름없다. 둘째는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신자유주의 정책의 가속화가 대도시 청년, 중산층의 요구와 정면에서 충돌한 점이다.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은 10대 청소년들에게 심각한 압박으로 다가온 것으로 보인다. 특히 4.15 교육자율화 조치를 계기로 0교시, 우열반 등 교육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중고생을 압박하자 10대 여고생을 중심으로 강력한 1차 저항전선이 형성되었다. 이것이 촛불시위의 시작인 5.2~3 시위이다.(주1) 이들은 친구에 비해 ‘장래 진로에 관심’이 높은 편(88.5%)이며 ‘학교성적에 대한 관심’이 높은 편(75.8%)이고 학교 성적의 경우에도 최상위 8.8%, 상위 17.8%, 중상 39.9%, 중간 21.1%, 중하 9.7%,하 2.7%이다.(중상 이상만 66.5%에 달한다) 또한 ‘각종 사회적 집회 참여 활동’ 경험이 ‘거의 없다’(53.9%)인 반면 친구관계, 가정생활, 학교생활에 대한 만족도도 50%를 넘었다. 특히 남학생들에 비해 여학생이 보다 높은 참여와 명료한 의식을 갖고 있다.(한겨레21, 2008.7.1에서) 전체적으로 보면 미래에 대한 고민이 많던 원만한 대도시 중산층의 자제들이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 등에 반발하여 강한 반이명박 정서를 갖고 거리 진출에 나선 것으로 볼 수 있겠다. 반면, 20대의 경우 대학시절 등록금 투쟁, 청년실업 등의 문제에서 일정한 저항을 보여주었지만 이를 전사회적인 의제로 부각시키지 못했다.(주2) 이들 20대가 비정규직이 되어 학생회와 같은 전통적인 운동구조 대신 온라인 공간이라는 새로운 형식을 빌려 촛불시위의 또 다른 동력이 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동력은 주부들과 30~40대 사무직 노동자들이다. 국민건강권과 물가인상 그리고 경제성장을 기대했던 이명박 정부에 대한 실망이, 주부들이 촛불시위에 참가한 동력이고 사무직 노동자들의 경우에는 이명박 정부에 대한 실망, 10~20대의 이명박 정부에 대한 부채 의식, 공기업ㆍ의료민영화 등 경제적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촛불시위에 참여한 배경일 것이다. 이렇게 보면 촛불시위는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려던 신자유주의 정책이 일차적인 피해자인 10대 청소년과 주부들로부터 시작되어 점차 20대 비정규직과 30~40대 사무직 노동자로 파급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이명박 정부 집권 이후 전면화 되는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해 노무현 정부 시절 상대적으로 안주해 있던 대도시 청년층ㆍ중산층의 저항이 촛불시위라는 형태로 표출되었음을 의미한다. 2) 구체적으로 각계각층의 동향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이명박 정권과 조중동, 검경 등 공안기관은 치명적인 타격을 받았다. 이는 신세대의 디지털 감각을 수용하지 못한 경직된 제도 권력과의 문화적ㆍ철학적 감수성의 차이, 경제성장을 기대했던 이명박 정부에 대한 실망감과 의료민영화ㆍ사교육 등 경제적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 촛불시위의 전개 양상을 보면 위 기관들은 회복하기 어려운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다음으로, 촛불시위가 확산되고 있음에도 삼성 등 대기업에 대한 공격과 대응 논리가 부재한 것은 현 국면의 중요한 약점(삼성 이건희 회장의 재판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임을 고려)이다. 이는 첫째, 삼성이 이명박, 조중동과 달리 현대적인(?) 이미지로 포장되어 있고 둘째, 촛불시위를 감싸고 있는 사회적 의식이 삼성과 같은 대기업을 공격할만한 수준에 이르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향후 운동의 발전이 한미FTA, 산은민영화, 교육 문제 등으로 발전한다고 보았을 때 대기업에 대한 사회적 의식이 명료하지 못한 점은 우려할만한 상황이다. 촛불시위를 내용적으로 주도하고 있는 대도시의 10대 청소년, 주부, 20대 비정규직, 30~40대 고학력 사무직에 대해서는 위에서 언급한 바 있다. 특징적인 것은 이들의 정치사회의식이 대단히 견고하고 단호하며, 이례적이고 놀라운 지속성과 전투성을 보여주고 있는 점이다. 반면 촛불시위의 코드가 주로 비폭력, 축제, 자발성과 같은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은 촛불시위가 경제적ㆍ계급적 이해관계라는 측면에서 보면 일정한 완충 지점이 존재함을 의미한다. (이 점이 화물연대와의 차이이다. 화물연대는 현실의 급박한 경제적 고통과 직결되어 있다면 대도시 청년층ㆍ중산층의 불안은 다분히 미래의 삶에 대한 불안이다) 조직 노동자의 경우는 두 가지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6월 13일~20일 화물연대의 파업은 비조합원의 광범위한 참여, 압도적인 우호적 여론에 힘입어 19% 인상, 표준요율제 2009년 시범실시 등 의미있는 성과를 얻으며 마무리되었다. 이는 물류 부문이 경유값 인상의 직격탄을 맞은 점, 차주의 성격이 자영업자의 성격이 강한 점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IMF 이후 한국경제의 두드러진 특징은 조직노동자가 노동조합을 통해 나름대로 경제적 지위 하락을 저지한 반면 자영업자는 아무런 완충 장치 없이 몰락한 점이다) 또한 촛불시위와 물류파업이 상승작용을 일으키며 상황을 압도할 것에 대한 집권층의 우려가 예상보다 빠른 타결을 보게 된 주된 배경이다.(그런 면에서 화물연대의 파업은 국지적으로 보면 성공이라고 볼 수 있으나 전체적으로 보면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 민주노총과 조직노동자의 경우 촛불시위의 최대 수혜자로 볼 수 있다. 촛불시위가 확산되면서 공기업 민영화 등 정부의 주요 정책이 촛불시위의 발전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후퇴되고 있고 법치주의를 앞세운 노동운동 무력화 전략 또한 현저히 약화되었기 때문이다. 반면, 투쟁의 적극성이 현저히 떨어지고, 촛불시위의 문화ㆍ정서와 자연스럽게 융합하거나 조직노동자다운 새로운 내용(조직노동자가 굳이 촛불시위의 문화적 코드를 받아들일 이유는 없다. 조직노동자는 조직노동자다운 새로움을 촛불시위와 결합시켜야 한다. 87년의 경우 6월항쟁이 학생과 사무직 노동자의 문화가 거리를 주도했다면 7~9월 노동자 시위에서 블루칼라는 강한 조직성과 전투성을 유감없이 과시한 바 있다. 그런데 2008년 5월의 거리에는 조직노동자 특유의 독창성이 결여되어 있다)을 결합시키지 못하여 주변화되고 있다. 이는 이들 조직노동자들이 전통적인 낡은 조직원리ㆍ문화를 가지고 있고 한국의 독특한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일정하게 포섭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20대 대학생은 청년실업, 과도한 등록금 등 IMF 이후 신자유주의 확산의 최대 피해자이다. 2003~2006년경 진행된 이들의 1차 저항은 사회적 의제로 확산되지 못한 채 좌절되었고 그 선배들이 20대 후반 비정규직이 되어 학생회라는 전통적인 조직구조와는 다른 형태인 온라인 공간을 타고 거리로 진출하고 있다. 20대 대학생들의 경우는 전체적으로는 소극적ㆍ개인적ㆍ패배적으로 취업 준비에 몰입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10대와 386세대가 주도하는 가운데 주로 온라인 공간을 통해 논란을 벌이고 있고 점차 적극적ㆍ사회적 정서가 확산되고 있다. 촛불시위 후반부에 동맹 휴업 등을 통해 거리 시위에 참여하고 있으나 지극히 미온적인 수준이다.(주3) 현 경제 정세에서 가장 열악한 계층은 영세자영업자, 건설 일용직, 농민 등이다. 내수침체ㆍ양극화 상황에서 영세자영업자와 건설 일용직은 그야말로 치명타를 입고 있다. 이들은 무정부적인 저항ㆍ자살ㆍ고립무원의 도피 등으로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경제적 피해를 그대로 감당하고 있다. 2005~2007년 신규 고용은 29만명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2008년 3~5월부터는 신규 고용이 20만명 이하로 떨어지고 있는데 집중적인 대상이 청년실업, 영세자영업, 건설일용직이다. 청년실업의 경우는 기존의 청년실업에 더해 공기업 인력조정, 대기업의 신규채용 감소 등으로 더욱 심각해지고 있고 영세자영업자는 내수침체의 직격탄을 맞았다. 건설일용직의 경우에는 2003~2007년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서 나타나고 있는 건설경기 후퇴에 그대로 노출되었으며 농민의 경우는 한미FTA, 사료값 인상 등이 문제의 핵심이다. 정부의 민생대책도 이들에 집중되고 있는데 이는 이들의 생존권이 그대로 두기에는 극단적인 상황으로 접어 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이 촛불시위에 대규모로 가세할 경우 상황은 자칫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크다. 이들의 처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보고서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자영업자는 물가 상승에 따른 비용 급증과 함께 내수 침체에 따른 판매 부진의 이중고를 겪고 있는 것으로 판단되며, 이들은 한계 상황에 이르러 퇴출될 경우 소득 자체가 없어지는 어려움에 처하게 된다. 이에 반하여 근로자는 물가 상승으로 인한 실질 소득의 감소라는 고통은 겪더라도 소득 자체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현대경제연구원 보고서, 「최근 고용창출 부진의 특징과 시사점」, 6.13) 영세자영업자, 건설일용직과 유사한 처지에 있는 것이 농민이다. 농민은 2006년 한미FTA 싸움을 주도했던 집단이지만 2006년 농민의 싸움은 대도시의 벽을 넘을 수 없었다. 2008년 시점에서 미국산 쇠고기 문제의 가장 절실한 이해자인 농민, 특히 축산 농민의 이해가 전면에 부각되지 않는 것은 한국 사회의 구조적 변화와 경제적ㆍ계급적 이해관계의 축이 어떻게 변화했는가를 보여준다. 즉 미국산 쇠고기는 이를 생산하는 생산자로서의 축산농가보다는 이를 소비하는 대도시 청년층ㆍ중산층의 건강권에 의해 보다 강한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이다. 그 만큼 한국사회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도시화ㆍ자본주의화되었다. 촛불시위에서 간과해서는 안 될 점이 수도권과 지방의 대립이다. 87년 6월항쟁은 서울과 부산, 광주라는 3대 거점이 존재했다. 이 중 가장 격렬하고 대규모 시위를 주도했던 곳은 부산이다. 그러나 20년이 지난 2008년의 촛불시위는 명확히 서울이 주도하고 있다. 이는, 첫째 그동안 인구구성의 변화, 둘째 인터넷 문화에 대한 친숙도, 셋째 촛불시위의 주 동력이 이명박 정부의 실정과 무능, 신자유주의 정책의 전면화에 따른 대도시 청년층ㆍ중산층의 저항이라는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위의 계급계층 분류대로 본다면 지방은 대도시 10대, 주부, 30~40대 사무직 노동자보다는 영세자영업자, 건설 일용직, 농민과 유사하다. 3) 위 사실에 기초하여 향후 운동ㆍ실천적 함의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촛불시위의 동력을 최대한 유지ㆍ발전시켜 이명박 정부의 신자유주의의 주요 정책을 무력화시켜야 한다.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은 세단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고환율 정책, 대운하 등 시대착오적인 경제정책 - 공기업ㆍ의료 민영화, 감세ㆍ규제완화 - 한미FTA, 산은 민영화’ 등이다. 이 중 1단계는 세계경제 상황과의 괴리 때문에 자연사했다고 볼 수 있고 촛불시위와 발전하면서 2단계의 상당 부분을 무력화시키고 있는데 여전히 보수세력의 힘이 강고하기 때문에 2단계 싸움이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따라서 촛불시위는 2단계를 넘어 3단계를 지향해야 한다. 둘째, 촛불시위가 포괄하지 못하고 있는 계급적ㆍ대중적ㆍ지역적 요구를 적극 제기해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자영업자와 대형마트 규제, 중소기업과 원자재-납품가 연동제, 비정규직, 대학등록금, 농민과 식량 자급률 법제화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이들 모두를 집약적으로 대변하는 것이 수도권과 지방 사이의 대립이다. 셋째, ‘고용-내수-국민경제의 안정’을 중시하는 정책으로의 대전환, 대기업 고통 분담론, 감세 정책과 재정 문제 등에서 이데올로기전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3. 정치지형과 권력재편 1) 이번 촛불시위에서 주목할만한 현상은 대의민주주의와 직접민주주의의 논쟁이 전면화된 점이다. 특히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 나온다”는 구호는 이번 촛불시위의 특징을 명료히 보여주는 대단히 시사적인 사건이다. 이와 관련 진보세력 내부에서 대중 직접행동의 정치적 한계를 인정하고 대중의 정치참여를 대의민주주의를 보완하는 수단(가령 최장집 교수)으로 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이는 촛불시위를 어느 수준으로 제한하려는 위험한 주장이다. 현재 촛불시위로 표출되는 대중의 진출은 정치적 명료함과 행동의 단호함, 절제되고 유연한 전술 구사로 위와 같은 우려와는 거리가 멀다. 따라서 촛불시위를 어떤 한계내로 제한하려는 일체의 발상을 거부하고 대중의 진출을 분출시키는데 주력해야 한다.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강렬한 열망이 광우병 쇠고기에 대한 관심보다 촛불시위의 진보성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대중은 광우병 쇠고기에 대한 국민건강권보다 국민의 이해를 무시하고 독단적인 결정을 내리는 이명박 정부와 보수 엘리트 집단에 대해 분노하고 있는 것이며 이러한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요구가 쇠고기 정국을 이처럼 완강하고 끈질긴 장기적인 국면으로 발전시킨 동력이다. 따라서 쇠고기 정국은 정치가 아닌 생활, 형식이 아닌 내용을 지향한 것이 아니라 대의민주주의라는 한계를 극복하고 민주주의를 온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려는 근본적인 요구를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이 구호처럼 촛불시위의 역동성과 진보성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은 없다. 대의민주주의와 직접민주주의를 둘러 싼 논쟁은 이미 몇 년 전부터 진보와 보수 사이에서도 진행된 바 있다. 이른바 자유민주주의를 둘러 싼 논쟁이 87년 6월항쟁으로 일단락된 후 진보 진영은 주로 민주주의의 심화, 보수진영은 자유주의 심화라는 기조로 자신의 입장을 발전시켰다. 자유민주주의로 통칭되는 정치질서가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로 분화되는 과정은 전자가 엘리트ㆍ전문가ㆍ대의제와 관련이 있다면 후자는 민중ㆍ보통ㆍ직접 민주주의와 연동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도 참여, 직접 민주주의로 민주주의를 심화시키려는 관점과 태도는 대단히 중요한 것이다. 신자유주의는 국민 내부를 두 개의 집단으로 양분하는 경향이 있다. 이럴 경우 당연히 신자유주의를 추진하는 세력은 양분되는 두 개의 집단 중 상층의 이해를 대변하여 엘리트 정치인 자유주의를 강조하게 되고 후자는 대중정치를 주창하며 민주주의를 중시하게 된다. 따라서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를 둘러 싼 논쟁은 신자유주의를 둘러 싼 경제 논쟁과도 연관된 중요한 문제이다. 아마도 올해 하반기부터 내년경에는 개헌 논의 등이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에도 중요한 것은 4년제 중임제ㆍ이원집정제와 같이 대의민주주의를 어떤 형식으로 재구성할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소환제ㆍ국민발안제 등 직접민주주의를 제도화하는 문제가 보다 근본적이고 중요한 문제임을 기억해야 한다. 2) 촛불시위에서 진보진영의 대응과 권력 재편 2008년 촛불시위의 주요한 특징은 이명박 정부는 물론 제도권 보수정당, 조중동 및 검경 등 공안기관 등이 거리의 강력한 민심에 의해 약화된 점이다. 진보진영 또한 2007년 대선 이후 민노당과 진보신당으로 양분된 이후 촛불시위라는 절대적 호재에도 불구하고 세력 확장에 실패했다. 국민대책회의로 대표되는 시민사회의 경우에도 촛불시위의 동력을 유지ㆍ관리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으며 진보연대ㆍ민주노총ㆍ전농 등 주요 연대ㆍ대중 조직 등은 주변화되었다. 바로 이 점이 87년 6월항쟁과 2008년 촛불시위의 결정적인 차이이다. 87년 6월항쟁은 양김씨라는 명확한 정치적 대안이 존재했고 전투적 재야와 청년학생이라는 거리의 지휘부가 존재했다. 반면 2008년 촛불시위는 대도시 네티즌에 의해 조직된 압도적 다수 군중이 엄청난 정치적 에너지를 발산하고 있음에도 이를 명확히 대변하는 정치적 실체를 갖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형태로든 이러한 간극은 조정될 수밖에 없다. 필자는 다음과 같은 경우를 예상해 볼 수 있다고 본다. 첫째는 보수세력이 권력 재편에 성공하는 경우이다. 촛불시위가 지속되고 경제위기가 심각해지면 이명박 정부는 무력화되거나 하야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그러나 이 경우 한나라당과 삼성 등 대자본은 이명박 정부 대신 적당한 카드를 내세워 보수 권력을 재편할 것이다. 어쩌면 개헌과 같은 정치적 승부수를 통해 ‘한나라당+자유선진당+통합민주당 일부’까지 포괄하는 새로운 형태의 정치연합을 통해 이명박 정부를 대체하려 할 지 모른다. 이 경우 진보진영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진보진영은 분열ㆍ소수화될 것이다. 둘째는 진보진영이 촛불시위의 성과를 계승하여 진보적인 정치세력 및 시민사회 진영 대다수를 규합하고 촛불시위의 동력과 의제를 수렴하는 경우이다. 이 경우라면 2010년부터 시작된 큰 규모의 선거에서 위 집단이 약진할 가능성이 크다. 셋째는 촛불시위의 동력을 진보진영이 수렴하지 못할 경우 촛불 동력은 진보진영 전체를 주변화시키고 새로운 정치세력으로 스스로를 정립하려 할 것이다. 진보진영에게 핵심적으로 중요한 것은 거리의 민심을 정치적으로 수렴할 정치적 실체를 구체화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네티즌의 열망을 국민소환을 통해서든, 선거를 통해서든 실제로 구현하는 것이다. 3) 이를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점이 필요하다. 첫째는 진보진영의 대대적인 세대 교체와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 현재의 진보진영은 20년 전 6월항쟁을 뿌리로 한 386세대를 주요 인적 자원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촛불시위에서 명확해졌듯이 이들은 촛불시위의 동력과 철학적ㆍ문화적 감수성을 달리 하고 있다. 이는 20년의 시간ㆍ세대의 문제로 쉽사리 뛰어 넘을 수 없는 벽이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지 않는가? 따라서 촛불시위를 창출했던 인적 자원과 철학적ㆍ문화적 감수성을 운동 질서내로 적극 흡수해야 한다. 둘째는 대단결, 대연합의 정치적 용단을 내려야 한다. 비록 촛불시위에서 진보진영이 뒤늦게 가세하기는 했지만 진보진영이 거리투쟁의 현장에서 물러서지 않을 것임은 명확하다. 그러나 진보진영에게 진정으로 부족한 것은 단결하고 단합해야 할 때 분열하는 것이다. 지금 촛불시위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거리에서의 헌신적인 투쟁과 함께 그렇게 싸운 정치적 성과물을 온전히 돌려줄 정치적 실체이다. 이 실체는 촛불시위의 철학적ㆍ문화적 감수성과 맞아야 하며 촛불이 표현하고자 했던 정책적 의제를 온전히 수렴해야 하고 이를 실제로 관철할 수 있는 정치적 권위가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진보적인 정치세력, 시민사회진영 나아가 종교계ㆍ학계 등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모든 계급계층을 모두 단결시킬 수 있는 안목과 품을 갖춰야 한다. 셋째는 수도권과 지방을 양분하여 지방 정치권력을 총체적으로 장악할 전략을 준비해야 한다. 촛불시위는 대도시 청년층ㆍ중산층이 주도한 측면이 강하다. 이들은 2001~2005년 고성장-저물가 체제하에서 나름대로 경제적 여유가 있었던 집단이다. 촛불시위를 경제적으로 해석하면 신자유주의의 압박이 대도시 청년층ㆍ중산층을 압박하자 이들이 인터넷이라는 최첨단 무기를 들고 강력히 저항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문제는 지방의 경우 신자유주의에 더해 ‘저성장-고물가’ 체제로 이행한 후과를 고스란히 지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내수침체의 후과는 수도권과 지방으로 양분된 경제적ㆍ계급적 이해를 타고 농민, 지방 소상공인, 지방 학생들로 집중될 것이다. 따라서 촛불보다 훨씬 강력한 동력이 지방으로부터 수도권을 향해 올라올 가능성이 크다. 특히 2010년 지방선거를 기점으로 민주노동당은 상당한 수준에서 약진할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이러한 지방의 흐름이 수도권까지 진출할 수 있느냐 인데 이는 위 두 번째 과제가 말해 줄 것이다. 4. 촛불시위와 통일정세 (주4) 1) 촛불시위와 통일정세를 말하기 전에 민족과 민족주의에 대해 언급해 보겠다. 민족이란 대체로 혈연과 언어를 같이 하는 공동체인데 혈연과 언어를 같이 하는 공동체인 민족은 객관적인 측면과 주관적인 측면이 결합되어 나타난다. 혈연과 언어의 공통성이 단순히 객관적인 측면이 아닌 이유는 혈연과 언어의 공통성이 생겨나기 위해서는 이러한 공통성을 담보하는 정치 권력, 경제생활의 공통성, 공통의 지향과 의식상태 등 주관적 측면이 결합되기 때문이다. 남북의 경우 혈연과 언어를 같이하는 공동체로서의 민족은 대체로 고조선에서 삼국시대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형성되었다. 여기서 남북을 구성하는 민족을 구성하는 주관적인 측면은 고대 권력, 단군신화, 김치ㆍ온돌 등 고대 시기와 연관되어 있다. 한편 근대적 이데올로기로서의 민족주의는 일제 침략과 함께 형성되었고, 저항적 성격이 강하다. 그런데 남북의 분단이 장기화되면서 민족, 민족주의를 구성하는 요소에서 상이한 측면이 나타나고 있다. 이를 남북과 남으로 나누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남북을 포괄하는 민족, 민족주의는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첫째, 혈연과 언어를 같이하는 공동체로서의 남과 북은 유지되고 있지만 남북을 구성하는 사람들의 정서적ㆍ문화적ㆍ심리적 일치성은 시간이 갈수록 약화되고 있다. 북은 주체사상, 선군정치, 고난의 행군 등을 거치며 독특한 일체성을 확보해 가고 있는 반면 남은 월드컵, 촛불시위 등을 거치며 북과는 다른 차원의 집단적 일체성을 획득하고 있다. 이는 남북을 연결하는 민족의 주관적 요소가 화해와 용서 등과 같은 느슨한 형태로 표출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6.15 공동선언 행사, 남북 축구 대결 등이 그러한 ‘느슨함’을 보여주고 있는데 민족을 이루는 주관적인 요소나 민족주의는 그러한 느슨함과는 거리가 멀다. 반면 촛불시위 과정에서 한반도 남단을 하나의 단위로 하는 강력한 집단적 정체성이 형성되고 있다. 위 한겨레21 10대 조사에 따르면 ‘촛불시위 참여 후 미국에 대해 전보다 비판적이 되었다’에 대해 ‘매우 그렇다’(39.0%), 대체로 그렇다.(31.6%)로 70.6%에 이르며 ‘애국심이 커졌다’에 대해 79.9%가 긍정적인 대답을 내놓고 있다. 위 사실이 의미하는 바는 10대를 중심으로 새로운 형태의 민족주의가 강력히 부상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둘째, 반면 정치군사적인 측면에서 한반도와 동북아시아 질서는 급변하고 있다. 6월 27일 냉각탑 폭파는 한반도와 동북아시아 질서가 급변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남 내부에서는 촛불시위를 통해 북과는 구분되는 역동적인 일체성이 확보되고 있는 반면 국방ㆍ외교ㆍ정치ㆍ경제와 같은 국가와 국가를 가르는 하드 파워 영역에서는 친미분단 질서를 혁파하는 새로운 질서가 출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상을 종합하면 촛불시위는 한반도 남단에서 북과는 구분되는 새로운 집단적 일체성을 확보해 가고 있는 점, 남북 민중의 심리 상태는 혈연과 언어를 같이 하면서도 화해와 용서와 같은 느슨한 형태로 연결될 것이라는 점, 국제질서라는 측면에서는 남북이 공조할 수 있는 신질서가 출현하고 있는 점이다. 이를 종합하면 6.15 선언 수준의 대단히 느슨한 연방제가 통일의 형태가 될 것이다. 2) 촛불시위와 민족, 민족주의와 관련 또 다른 중요한 논점은 다음과 같다. 보통 진보와 중도, 보수 등으로 정치세력을 삼분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식으로 정치세력을 구분하게 되면 진보는 결코 보수를 압도할 수 없다. 그러나 촛불시위가 집단적 일체성을 확보하며 대한민국 수준의 민족, 민족주의로 발전하게 되면 양상은 달라진다. 민족, 민족주의의 위력은 민족적 일체성을 구분하는 자를 보수라는 이름으로 허용하는 것이 아니라 매국노로 단죄하기 때문이다. 촛불시위 과정에서 형성되고 있는 강렬한 집단적 일체성은 인터넷 공간을 타고 대한민국 남단의 4,800만 국민을 서서히 하나로 묶어 가고 있다. 이 집단적 일체성이 보다 강화될 경우 이를 거부하는 세력은 보수가 아니라 대한민국 민족주의를 거부하는 세력으로 고립될 것이다.(주5) 뉴라이트와 보수세력 중 조중동 등의 낡은 코드의 친미파가 촛불시위가 확산되는 과정에서 빠르게 고립되고 있는 것은 이러한 현상이다. 3) 이후 논의의 진전을 위해 다소 시론적인 주장을 첨부해 보겠다. 신자유주의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다음의 네 가지가 결합되어야 한다. 첫째는 친미적 국제질서에 대비해 탈미적 국제질서를 구체화할 수 있는 정치 환경이다. 후자가 보장되지 않으면 탈미가 도덕적으로 옳을 수 있지만 다수 대중의 공감대를 얻을 수 없다. 아마도 다수 대중은 용미ㆍ실용이라는 이름의 중간 지대로 흡수될 가능성이 크다. 둘째는 탈미를 구체화할 수 있는 민족주의이다. 친미를 보수라는 이름으로 허용하게 되면 진보는 탈미할 수 있는 정치적 힘을 구비할 수 없다. 보수는 권력과 재부를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보다 강력한 힘의 근원지인 신자유주의 본국의 강력한 지원을 갖고 있다. 이를 선거에서 표 계산하듯이 숫자와 숫자의 대결로 보는 것은 정치가 무엇인지를 모르는 순진한 발상이다. 셋째는 신자유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진보적인 경제강령, 특히 대도시 서민층을 동원할 수 있는 의제이다. 이번 촛불시위에서 국민건강, 공기업민영화, 의료민영화, 교육 문제 등에서 이런 주장의 일단을 발견할 수 있다. 넷째는 대도시 서민이 신자유주의의 고유한 경제적 표현인 양극화된 두 개 집단 중 상층을 제압할 수 있는 심화된 민주주의이다. 그런 면에서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 나온다’랄지 국민소환제와 같은 주장이 광범위하게 공유되고 있는 점은 대단히 바람직한 현상이다. -------------------------- (주) 1) 김종민 민주노동당 청소년 위원장에 따르면 5.2~3 촛불시위가 시작되기 이전인 4.19 ‘0교시!, 야자보충! 우열반! 학교자율화반대 청소년연대’라는 이름으로 약 200여명의 청소년이 세종문화회관에서 학교자율화에 반대하는 촛불을 들었다고 한다.(“촛불, 어디로 가야 하는가?”, 진보정치연구소 주최 토론회, 6.27에서) 그리고 “그날의 두드러진 구호는 반 이명박이었다”고 한다. 2) 단위 %, 만명
2003~2007년 노무현 정권 집권 시절 GDP 성장률은 대체로 4.5~5% 사이에 있었고 도시 가구 소득증가율은 이보다 다소 높았다. 반면 고용상황이 심각해지고 물가인상률을 뛰어 넘는 국공립대.사립대 등록금 인상이 20대를 압박하고 있었다. 이것이 시사하는 바는 20대가 청년실업과 등록금 인상이라는 형태로 경제적.계급적 압박을 심하게 받는 반면 여타 도시 중산층은 상대적으로 여유로웠음(?)을 의미한다. 20대가 대학생 시절 청년실업과 등록금 문제에서 좌절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20대가 갖고 있었던 주체적인 한계와 함께 신자유주의의 사회적 압력이 20대에게만 집중되었던 객관적인 한계와도 관련이 있는 것 같다. 3) 20대의 사회적 진출과 관련해서 중요한 것은 이들이 사회참여를 하는 통로이다. 20대 대학생들의 경우 대부분 학생회라는 전통적인 방식이 아니라 온라인이라는 새로운 공간을 통해 사회적 진출을 도모하고 있다. 이는 한총련.한대련 따위의 조직노선과 조직노선에 담겨 있는 시대적 안목이 20대의 절박한 처지와 부합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4) 이 부분은 프레시안 6.14자에 실린, 이근 “새로운 ‘대한민국 민족주의’의 탄생”을 일독해 보기 바란다. 5) 어떤 집단이든지 그 집단을 구성하는 모든 구성원을 포괄하는 가치.세계관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이 가치.세계관은 어느 순간까지 그것을 뛰어 넘는 이단적인 가치.세계관을 고립.배타.응징하여 집단의 정체성을 유지하게 된다. 이는 가족, 국가는 물론 수준을 달리하지만 동창회, 동호회 같은 조직에도 그대로 관철된다. 그런데 유독 탈민족주의자들은 민족에 대해서만 날을 세우는 경향이 있다. 탈민족주의자들이 선호하는 프랑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인데 2002년 프랑스 대선에서 시라크 우파 후보에 이어 장 마리 르팬이라는 극우주의자가 2위로 결선투표에 나서게 되자 결선투표에서 좌우를 불문하고 시라크에 몰표를 던져 연대와 박애라는 프랑스의 집단적 정체성을 지켜낸 바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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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 제33조 노동3권(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은 박물관속의 유물로 전락
국민이라면 누구나 최고법인 헌법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 것이다. 그 헌법에 명시되어 있는 노동자의 권리가 이렇게 무참히 짓밝히는 현실을 알고 있는가. 이랜드일반노조는 설립신고가 된 적법한 노동조합이다. 2007년 단체교섭을 진행하며 사측의 무성의한 교섭에 의거 노동위원회 조정중지와 조합원파업찬반투표를 거쳐 적법한 절차에 의해 파업이 이루어졌다. 노조의 파업이 무엇인가. 헌법상 단결권에 의해 만들어진 노동조합이 단체교섭을 요구하여 사측이 이를 거부하거나 결렬될시 최후적으로 교섭을 압박하기 위하여 행하여지는 단체행동권이다. 이는 노동자의 권리이며 권리실현행위인 것이다. 제조업의 경우 공장의 기계를 멈추듯이 유통업의 경우 판매행위를 중단시키는 것이 바로 파업이다. 파업권은 자본주의하에서 자본에 대항하여 유일하게 노동자들이 행사할 수 있는 최소한의 권리이며 이는 저항권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권리는 우리나라에는 선언적인 규정에 불과한가 보다. 헌법 교과서에나 존재하는 권리, 박물관속에 고이 모셔두어야 할 유물.......
작년 말 국회는 비정규보호법을 통과시켰고 올해 7월부터 시행이 되고 있다. 이 법으로 인하여 많은 기업체는 보란 듯이 수많은 계약직 비정규노동자를 계약해지, 즉 해고시키고 외주, 용역화시키는 작업에 들어갔다. 이랜드 홈에버의 경우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홈에버 시흥점의 호혜경씨의 경우 더 이상의 계약 연장없이 계약해지를 당하였고, 이후 서울지방노동위원회 부당해고구제신청에서 부당해고로 인정되었다. 그 부당성의 근거는 이전 까르푸노조 당시 사측과 맺었던 단체협약사항에 “18개월 이상 계약직 모든 사원의 경우 정당한 사유없이 계약만료시키지 못한다”란 규정을 어겼기 때문이다. 단체협약을 승계한 이랜드는 이를 지켜야 할 법적 의무가 있으나 그 의무를 다하지 않았고, 오히려 이번 교섭에서 당연히 지켜야 할 18개월 이상 계약직 사원의 고용보장을 양보나 한 듯이 노조에 제시하는 뻔뻔한 모습을 보였고, 부당해고로 인정된 호혜경씨의 원직복직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이러한 사측의 불법행위를 눈감아주고, 20여일의 매장점거행위를 불법점거라고 하여 법을 집행하는 정부는 공권력을 투입하여 조합원을 강제연행하였다. 노조위원장을 제외한 모든 조합원이 영장기각을 통하여 풀려났지만 다시 검찰은 영장재청구를 통하여 노조 집행부를 구속하려하고 있다. 얼마전 조폭을 사주하여 집단폭행을 일삼은 재벌회장에게는 여론에 이끌려 구속영장을 청구하였으나 구속되자마자 바로 보석으로 풀려나는 모습을 보았다. 그렇게 강력한 법집행의 의지를 보인 검찰은 왜 법원의 보석결정에는 침묵하고 있는 것일까. 왜 그렇게 악착같이 한번 영장기각된 노조집행부들을 구속시키려는 것일까.
법원은 노조집행부들의 홈에버매장점거와 시위행위등 영업방해금지가처분신청을 받아들이며, 이를 어길시 1회의 위반행위에 노조에게는 1,000만원, 조합원에게는 100만원을 사측에 지급하라는 간접강제금을 부과시켰다. 이전부터 가처분신청이 사측의 전유물이었지만 이렇게 높은 강제금을 부과시키지는 않았었다. 한마디로 노조의 조합활동을 완전히 차단하는 것이며, 더 이상의 파업행위를 묵과할 수 없다는 사법부의 판단인 것이다. 앞으로 진행될 노조에 대한 형사상 업무방해등고소건과 민사상 손해배상사건 소송에 대한 사법부의 판단을 더 지켜봐야 할 것이지만 그 결과에 대한 전망이 그리 밝지는 않을 것이다.
헌법상 노동3권을 구체화하고 보장하기 위한 법률이 “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이하 ‘노조법’이라 함)”이다. 사실 구체화하고 보장하기 위한 조항보다는 구속하고 제한하기 위한 조항이 많지만, 이 법에 의하여 적법하게 이루어진 쟁의행위(파업)의 경우 민사상 손해배상책임을 면할 수 있고, 정당한 쟁의행위의 경우 형사책임도 면할 수 있다. 결국 적법파업이냐 정당파업이냐가 앞으로 소송의 관건이 될 것이고 법적 판단의 쟁점일 수밖에 없다.
앞에서 국회, 정부, 법원 등 우리가 소위 얘기하는 법치국가 3개 권력기관의 이랜드투쟁 관계와 행태를 보았다. 한결같이 어느 일방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 같지 않은가. 자본주의 사회라서 자본가가 주인인데 당연한 거 아니냐고 한다면 정말 할 말이 없다. 지구를 떠나서 살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러나 보시라. 노동자가 존재하지 않으면 자본가도 없다. 노동자가 주인되는 세상을 바라는 게 아니다. 누가 누구위에 군림하는 게 아니라 적어도 사람으로서 함께 대접받을 수 있는 사회는 되어야 하지 않겠나. 그러려면 “법앞에 평등”하다는 기본원칙은 최소한 지켜야 할 것이 아닌가.
최근 노동부장관은 민주노총에게 “제3자 개입”이라고 하지 않나, 이랜드사측과 매장협력업제 점주들 그리고 보수언론은 이번 투쟁에 노조와 조합원을 사주하는 “외부세력”이 있어 이를 주도하고 있다고 한다. 인권변호사라며 자임했던 노동부장관이 기본적인 노동법지식도 없이 이런 말을 하다니 정말 어처구니없다. “제3자 개입금지”가 노조법에서 삭제된 것이 언제인가, 그리고 상급단체인 노동조합(민간서비스연맹, 민주노총)이 지원할 수 있는 “제3자 지원신고”사항이 노조법에 명시되어 있었고 이조차 노사가 자율적으로 지원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ILO의 권고를 받아들여 7월 1일 폐지된 상태이다. 그럼 외부세력은 누구인가, 민주노동당을 얘기하는가. 민주노동당은 노동자중심당으로서 노동자를 대변하고 노동자의 정치세력화를 위하여 활동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민주노동당은 오히려 더 열심히 이 투쟁에 앞장서서 힘없는 노동자들의 눈물을 닦아주어야 하고, 근본적인 법제정 등 입법활동에 매진하여야 한다.
최근 이랜드자본은 권력을 등에 업고 보수언론을 통하여 온갖 방법으로 노조를 무력화시키고 조합원들을 분열시키려는 행위를 서슴치 않고 있다. 이에 이랜드상품의 불매운동은 상당히 의미가 있는 것이다. 단지 하나의 기업을 완전히 멈추게 하는 것이 아니라 양심 없고 나쁜 기업에 대하여 법이 심판하지 못한다면 시민들이 심판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서서히 시민들이 움직이고 있다. 이랜드자본이여 이를 느끼지 못하는가.........
정윤각 노무사[마포구위원회 노동위원회 위원장]
| 연금 개악, 국민 총파업해야 될 사건 | |||||||||||||||
| [기고-연금 투쟁 이후] 참혹하게 패배했지만 아직 싸움 안 끝나 | |||||||||||||||
국민연금법 개악안이 지난 3일 밤 끝내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됐다. 민주노총 공공운수연맹 공공노조는 사회연대연금지부 3,400여 전 조합원이 2일과 3일 전면파업에 들어가고 밤샘농성과 국회 앞 집회, 대국민 선전전 등 총력투쟁을 벌였다. 그러나 국민연금 개악을 막아내기에는 우리의 실력이 너무도 역부족이었다.
이번에 통과된 국민연금 개악안의 핵심은 소득대체율이 60%였던 연금 수준을 40%로 무려 1/3이나 삭감시킨 것이다. 이를 알기 쉽게 환산하면 월 소득 180만원의 노동자가 30년간 연금에 가입했을 경우 월 90만원을 받던 것을 58만원으로 줄어들게 됐다. 이 땅에 국민연금제도가 뿌리 내린 지 채 20년도 되지 않은 시점에 정부와 열린우리당, 한나라당은 국민연금제도의 불신을 치유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기보다는 국민들을 참주선동하며 연금액을 삭감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대다수의 국민들은 국민연금이 대폭 삭감당한 사실을 제대로 모르고 있다. 민주노총 조합원 역시 마찬가지다. 임금 1~2% 인상에는 누구나 더 열심히 투쟁하면서도 연금이 무려 33%나 깎여나가는데도 우리 모두는 솔직히 무관심으로 일관했다. 우리들의 무관심이 결국 국민연금을 저들 보수정치권의 장난 속에 황폐화하도록 만들었다. 국민연금 개악의 최대 피해자는 바로 전 국민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노동자, 농민, 자영업자다. 반면에 최대의 수혜자는 재벌 보험회사와 초국적 보험사들이다. 이들은 공적연금제도가 축소되면서 대거 사보험으로 이동할 것으로 예상하고 뒤에서 웃고 있을 것이다. 이탈리아, 독일, 스웨덴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서구 유럽에서는 국민연금 수급률 조정을 국민투표 없이 몰아붙이면 정권 자체가 위기에 몰리게 된다. 이런 현상이 발생한 이유는 바로 연금이 국민 생존권의 최후의 보루라는 것을 체험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의 혜택을 실질적으로 받게되면서 사회적 부양(세대간 연대)의 경험을 갖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국민들도 이번 국민연금 개악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낱낱이 알고 분노할 것이다. 그리고 연금을 황폐화시킨 보수정치권을 심판할 것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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